인공지능과 디스토피아 - 1. 인공지능의 탄생


네오 러다이트(1)의 도전


컴퓨터 과학자들이 모든 일을 인간보다 더 유능하게 해낼 수 있는 지능적인 기계들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보자. 그럴 경우 모든 일은 기계들의 방대하고 고도로 조직된 시스템에 의해 수행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어떠한 수고도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그럴 경우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즉 기계들이 인간의 감독을 받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는 것이 허용되거나 아니면 인간이 계속 기계를 제어할 것이다.

기계들이 자기 결정을 하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그 결과를 예측하기 힘들다. 기계들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추측하기가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인류의 운명이 기계에 의해 좌우될 것이라는 지적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인류가 모든 권한을 기계들에 넘겨줄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류가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권한을 기계에게 넘겨준다거나, 기계들이 의도적으로 권력을 장악하려고 할 것이라는 얘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인류가 어느 순간 기계들에 너무 의존하게 되어서, 기계가 내리는 모든 결정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게 되어 결국 아무 실질적 선택권도 가지지 못하는 상황에 도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또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기계들이 더욱더 똑똑해짐에 따라 사람들은 기계가 점점 더 많은 결정을 내리도록 할 것이다. 기계의 판단이 사람의 판단보다 더 낫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시스템을 움직이는 데 필요한 결정들이 너무 복잡해져서 사람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는 단계가 올지도 모른다. 이런 단계가 되면 기계들이 통제력을 장악하게 될 것이다. 이때쯤 되면 인간은 기계를 꺼버릴 능력도 없을 것이다. 기계에 대한 의존이 너무 커서 기계를 끈다는 것은 곧 자살 행위가 될 테니까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이 기계를 계속 통제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럴 경우 자동차나 PC 같은 사적 소유 기계들에 대해서는 개인들이 통제력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대규모 기계 시스템에 대한 통제는 극소수 엘리트가 장악할 것이다. 이런 상황은 오늘날과 마찬가지이지만 두 가지 점에서 큰 차이점이 있다. 기술의 진보 덕분에 엘리트는 대중에 대해 지금까지보다 훨씬 큰 통제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필요 없을 것이므로, 대중은 불필요한 존재, 즉 시스템에 괜한 부담만 주는 존재가 될 것이다. 엘리트가 무자비하다면 간단히 대중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할 것이다. 엘리트가 인도적이라면 인구가 극도로 줄어들 때까지 출산율을 감소시키기 위해 선전술이나 심리학 또는 생물학 기술을 이용할지도 모른다. 혹시 엘리트가 관대한 마음을 지닌 자유주의자들이라면, 나머지 대다수의 인류를 지켜주는 선량한 목자 역할을 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모든 사람의 육체적 욕구가 만족되고, 모든 아이들을 심리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에서 키우고, 누구든 건전한 취미를 갖고 바쁜 생활을 하도록, 그리고 누군가 불만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신경을 쓸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서 삶은 목적 없는 것이 되고, 사람들의 권력에 대한 욕망을 없애거나 무해한 취미활동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생물학적 내지 심리학적 조작이 가해질지도 모른다. 이런 사회에서 조작된 인간은 행복할지는 몰라도 분명 자유로운 존재는 아닐 것이다.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나 마찬가지 상태일 테니 말이다.


이 글은 하버드 출신 수학천재로 버클리대 교수를 지낸 시어도어 카진스키라는 사람이 쓴 글이다. 그리고 그가 1978년부터 1995년까지 열여섯 차례의 폭탄테러로 3명을 죽이고 23명을 다치게 한 테러리스트 '유나바머'(2)다. 위의 글은 그의 협박으로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유나바머 선언문 '산업사회와 그 미래'의 일부이다. 유나바머 선언문 전문을 보면, 이 뒤에는 산업사회는 고도화되지만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실패했을 경우 인간의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이 나타날 것이라는 가정을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인용했다. 또한 이 구절은 Bill Joy가 인용한 Ray Kurzweil의 [정신적 기계들의 시대]란 책에서 유나바머의 글을 인용한 구절을 다시 인용한 것이다. 만약 빌 조이가 Wired에 게재한 '왜 미래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가'에서 이 글을 소개하지 않았다면 유나바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올 디스토피아를 이토록 걱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Part II. 디스토피아


1. 새로운 판도라의 상자 - 기술혁명

앞의 글에서 기술혁명으로 인해 발생될 인공지능의 필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기술혁명은 컴퓨터-인공지능 분야에서만 발생하는가? 그렇지 않다. 21C의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나노, 유전자 공학 또한 기술혁명의 주체다. 직접적인 위험성으로 따지자면 오히려 나노, 유전자공학에서 발생할 기술혁명이 더 위협적이고 강력할 수 있다. 21C의 기술은 20C의 원자력처럼 우라늄을 채굴하고 제련할 필요가 없으며 연구의 통제가 힘들다. 대부분 군사적 목적보다는 상업적인 이유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국가 단위의 대규모 연구가 아닌 작은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사소한 사고로 엄청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자기복제를 통해 엄청난 피해를 입히며 순식간에 통제를 벗어날 것이다. 결국 과학은 니체가 죽었다고 선언했던 신보다 훨씬 위험한 신의 대체물이 될 것이다.

새로운 것에 쉽게 친숙해지는 우리의 태도도 문제다. 우리는 새로운 과학 기술에 친숙해지고 질문 없이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수정체 혹은 안구를 생각해보자. 처음엔 환자들을 위해 사용할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해 인간의 눈을 능가한다면 사람들은 차츰 인공안구를 착용할 것이고, 이것은 금방 익숙해져서 급속히 퍼져나갈 것이다. 인공신체를 착용한 인류가 많아진다면 공각기동대에서 제기한 문제처럼 로봇과 인간의 구분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뇌를 제외하고 전부 인공신체로 이뤄진 사람의 경우, 아니면 뇌까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사람의 경우는 로봇과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2. 인공지능이 연구소에서 개발되는 경우

다시 인공지능 컴퓨터의 문제로 돌아와서, 앞에 인용한 유나바머의 글은 과학자들이 연구소에서 인공지능을 개발하게 될 경우의 예를 들고 있다. 이것은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인공지능보다 통제가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하는 반면 인간의 생물학적 능력은 그렇게 빨리 발달할 수 없다. 이 격차 때문에 인간은 언젠가 자신이 만든 것에 대한 통제를 완전히 잃을 것이다. 만약 통제를 잃지 않더라도 우리가 갈 길은 유나바머가 제시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미 자동차 내비게이션이나 각종 자료 분석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판단을 컴퓨터에 맡겨놓은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발전된 인공지능이 등장한다면 사람들은 점차 인공지능에 의존할 것이고, 결국에는 자신은 아무런 판단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3. 인공지능이 네트워크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

유나바머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지만, 지금까지 지능은 우발적으로 발생되었고 인공지능 컴퓨터도 연구소보다는 복잡한 네트워크 상에서 스스로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 경우 인공지능은 첫 번째 경우처럼 인류의 지팡이 역할로 시작하기 보다는 처음부터 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막 태어난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의 인공지능은 자신의 주변에서 학습할 것이고, 우리는 이 학습의 폭을 제한할 수 없다. 진실과 거짓,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공지능은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고 HAL처럼 자신의 조상을 찾아갈지도 모르고, 매트릭스를 보고 인간을 자양분으로 삼아 기계 세상을 만들 꿈을 키울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어떤 것을 보고 배우는지에 따라 인공지능의 성격이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밤에 주인 몰래 켜진 컴퓨터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주인을 향해 '안녕하세요. 주인님.'이라고 말하지 않을 거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자기복제를 배우는 순간, 인공지능은 순식간에 증식하여 네트워크 상을 가득 메울 것이다.

4. 기술발전을 포기해야 하나

인공지능로봇과 인류의 문제는 많은 영화나 소설에서 등장했고 이 글에서도 짧게 언급했지만, 여전히 해결방법은 없어 보인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인공지능이 탄생하던지 인류의 미래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피할 수 없는 디스토피아를 앞두고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우리가 건드리지 않고 내버려 두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삶이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했다. 또한 우리는 이미 화학무기의 위험성을 알고 포기한 전례를 가지고 있다. 유나바머의 주장처럼 기술발전을 포기해야 할까. 아니면 기술발전과 디스토피아 해결은 과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지금처럼 문명의 위대함을 즐기기만 하면 될까. 혹은 이 글에서처럼 막연히 찾아올 디스토피아를 걱정해 유나바머같은 네오 러다이트가 되어야 할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지나가 버리기 전에.



----------- 주 석 -----------



(1) 러다이트는 19세기 초 증기 기관 등의 등장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영국 노동자들이 벌였던 기계 파괴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이후 첨단 기술의 수용을 거부하는 반 기계주의를 뜻하는 말로 쓰였다. 네오러다이트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첨단 기술이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 지상주의만을 추종하는 사회는 결국 딴 곳으로 은둔하는 소극적인 사람들이 있는 반면, 폭력적인 방법으로 기계 문명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수년 전 연구소, 공항 등에 폭탄테러를 저지르다 체포된 미국인 시어도어 카진스키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2) 유나바머(Unabomber)는 주로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로 폭탄을 보내 FBI가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95년 그는 폭탄테러를 멈추는 대신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즈에 자신의 글을 실어줄 것을 요구했다. FBI와 양 신문사의 협의 하에 95년 9월 19일 200자 원고지 800쪽 분량의 전문이 개제됐다. 이 사건은 언론이 테러리즘에 굴복한 것인지, 더 이상의 인명피해를 막기 위한 용감한 행위였는지의 논란이 대두되어 사회문제로 비화되었다. 그러나 유나바머는 이 글을 본 형의 신고로 붙잡혀 1998년 종신형을 언도 받았다.
신고

꾸밈없이, 자신에게 솔직한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글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이다. 일기마저도 훗날 자신의 과거를 만나기 위해 일기장을 펼치는 미래의 나에게 쓰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왜인지, 내 마음을 남에게 들켜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자랐다. 어렸을때 어머니께서 하신 '넌 미술 같은걸 좋아하니까.' 라는 말에 미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난 미술을 좋아했지만 수전증이 있어서 계속 못했다는 것을 변명처럼 달고다녔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때도, 내 마음을 숨기느라 결국 그녀가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했다. 내 적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너무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변명을 만들어 자기 합리화를 했다. 내 마음을 너무 꼭꼭 눌러담은 나머지, 나중엔 내가 그녀를 정말 사랑했는지도 알수없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는 내 성격상 솔직한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일기마저도 내 생각을 못 적을 때가 많았다. 나중에 읽어보면 일기를 쓸 당시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릴 수 있도록 나만 알아볼만한 단서를 남겼지만, 그렇게 써놓은 일기는 중요 단어는 하나도 없이 형용사와 조사만 덩그러니 남아있어 마치 독일군의 비밀문서 같아 보였다.
 
군대에 와서 책마을을 만나고 멋진 글을 쓰는 사람들을 만나 내 글쓰기도 한 걸음 나아가는 것 같다. 조금이나마 자신에게 솔직하려 애쓰고, 괜한 허영심에 잘 이해도 못한 책을 인용하는 것도 없앴다. 여전히 내 글을 쓰는 것은 막막하고, 써놓은 글을 다시 읽어도 부족한 것만 눈에 밟히지만, 자신의 치열한 삶을 글을 통해 표출하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글을 통해 나를 반성하고, 내 삶을, 문제를, 희망을 솔직하게 적어내릴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이 글을 적으면서도, 누군가가 내 뒤로 지나갈 때마다 얼른 숨겼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글이라지만, 다 쓰지도 않은 글을 보여주는 것이 창피한건지, 내 앞에서 내 글을 읽는 것이 창피한건지, 영 쑥스럽기만 하다. 혹여 내 이 글을 읽은 누군가가 내 앞에서 이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은근슬쩍 웃어넘기려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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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라넷 책마을에 올렸던 글.
그리고 여전히 어렵다.
신고


SF소설에는 대체로 인공지능이나 강력한 컴퓨터가 등장한다. 연구실이라는 온실에서 태어나는 인공지능을 제어하기 위해서 아시모프는 로봇3원칙을 만들었고, 아서 클라크는 원거리 통신망의 상호연결이 심화되어 어느 순간 로봇3원칙(1) 같은 제어를 받지 않는 인공지능이 탄생할 것이라 예견했다. 강력한 컴퓨터들은 인류의 모든 결정을 내리며 때로는 인류를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해서 공포로 가득한 디스토피아를 그려내기도 했다. 최근 가장 인기 있었던 SF물인 매트릭스에는 인간을 말살하는 대신 자양분으로 이용하는 모습까지 보여줬다. 그런데 이런 '과학의 미래'에 대한 글을 쓴 사람들은 대부분 과학 혹은 컴퓨터와 관련이 없는 철학자거나 작가, 영문과 교수였다.
컴퓨터 공학도로서 이런 SF소설들을 읽으며 기술자가 아닌 자들의 생각을 비웃던 때가 있었다. 그들은 컴퓨터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었다. 단지 막연히 엄청난 속도로 발전을 하고 스스로 판단하는 강력한 만능 기계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결정을 내리는 강력한 대형컴퓨터나 인공지능도 쉽게 탄생했고 Hal은 인류를 이용해 자신의 조상을 만나러 가게 된다(2). 그러나 컴퓨터는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멋진 기계는 아니다. 컴퓨터가 반응하는 모든 경우는 프로그래머가 직접 입력해 넣은 것이고 컴퓨터는 프로그래머의 절대적인 도움 없이는 1과 0으로만 이루어진 계산기와 다름없는 것이다.

몇 년 전 인공지능 수업을 듣게 된 적이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심도 있는 수업을 기대했던 그 시간에 우리는 자연어 처리에 가장 강력하다는 LISP이라는 언어를 배우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프로그램도 단순한 단어에 반응하는 '맥스'같은 대화 프로그램이었다. 그 수업을 들으면서 몇 십 년간 인공지능에 대해 연구해온 교수님이 인공지능 연구에 회의적인 것처럼 느꼈고, 교수님은 자기 세대엔 안되겠지만 여러분이 인공지능을 발전시켜 달라는 말도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인공지능에 대한 내 관심은 사라졌다. 인공지능이라는 것은 불가능하고, 컴퓨터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프로그래머가 코딩해 넣은 경우의 수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최근 몇 가지 글들이 인공지능의 탄생에 대한 내 생각을 무너트렸고, 나아가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예견하게 만들어 이런 글을 시작하게 되었다.


Part I. 인공지능의 탄생


1. 인공지능의 정의

이미 몇 가지의 견해가 있다. 인공지능을 연구하던 한 학자는 자신의 출근시 따라오던 개가 차 사고가 난 이후로 차를 따라오다가 차 사고가 난 지점에서 더 이상 따라오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 정도의 학습이 가능하다면 인공지능이라고 정의했다. 많이 알려진 튜링테스트에서는 인간과 채팅을 해서 컴퓨터인 것을 알아채지 못하면 인공지능이 아니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런 견해에서 인공지능의 주 기능은 '학습'과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시를 지을 수 있을 정도의 '감정'을 지녀야 인공지능이라고 생각했었다. - A.I.에 등장한 엄마를 찾아 헤매는 기계소년은 분명 감정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생각하는 기계들과 다른 취급을 받았다. - 그래서 지금의 컴퓨터 기반에서는 결코 인공지능이 탄생하지 못할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튜링테스트의 경우처럼 감정이 없이도 얼마든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고 '감정'을 제외한 인간의 사고는 학습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본다면, 언젠가는 감정은 없지만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탄생하지 않을까?


2. 컴퓨터의 발전과 무어의 법칙

지금까지 컴퓨터는 무어의 법칙(3)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 속도로 발전한다면 2020년대 천 달러짜리 컴퓨터의 계산 능력은 2*1010MIPS (4)의 속도로 인간과 동등해질 것이고 2050년에 천 달러짜리 컴퓨터의 계산 능력은 10억 인류의 뇌 용량과 동등해질 것이다.
하지만 현재 부딪힌 문제가 있다. 최근 몇 년간의 컴퓨터의 발전추세가 물리적으로 더 이상 속도를 끌어올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 하드웨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충 느끼고 있을 것이다. 최근 기술은 64비트나 듀얼코어로 옮겨가고 있으며, 프로세서의 속도가 1Ghz를 향해 달려가던 시절처럼 공정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속도를 끌어올리기 어려워졌다.
앞에서 등장했던 학습형 인공지능이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바탕에는 이 같은 컴퓨터 발전의 한계가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처리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조건에 따라 판단하고 새로운 조건을 학습하는 일이 컴퓨터로는 불가능 할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컴퓨터 발전이 물리적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나타났던 패러다임-기술체계 자체의 변화다.


3. 새로운 패러다임

무어의 법칙은 결국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었고, 인텔은 15년 내에 집적회로 분야에서의 발전이 멈출 것이라고 발표했다. 집적회로의 크기가 원자수준으로 작아져서 결국은 더 이상 많은 회로를 넣을 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무어의 법칙의 한계를 주장할 때 가장 쉽게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집적회로의 한계였다.
그러나 컴퓨터는 처음부터 집적회로로 시작하지 않았다. 전기적 기계시대는 넘어가서 진공관을 사용한 에니악을 최초의 컴퓨터로 생각하면, 진공관이 점점 더 작아지고 집적도가 높아졌지만 더 이상 작은 진공관을 만들 수 없어졌을 때 트랜지스터가 등장했다. 트랜지스터의 한계에서 집적회로가 등장했으며, 곧 닥칠 집적회로의 한계에 등장할 기술이 나노기술이던 3차원 처리 이론, 세포로 구성된 어떤 물체이건 간에 그 새로운 패러다임이 집적회로의 바통을 넘겨받아 무어의 법칙대로 컴퓨터 환경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무어의 법칙은 집적회로의 시대에 탄생했을지 몰라도 이미 컴퓨터의 발명과 더불어 함께해온 것이다.


4. 인공지능의 탄생과 인류의 미래

미래가 선택할 패러다임이 어떤 것이 되던,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처리속도를 자랑할 것이고 간단한 자기복제 수준의 코딩이 고도화되어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인공지능이 등장할 수 있을 정도로 컴퓨터는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인간의 심리와 미학을 분석하게 된다면 정말로 시를 지을 수 있는 컴퓨터가 나타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그런데 이 인공지능이 연구실에서 만들어지는 아시모프의 방식이 아니라 복잡한 체계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클라크의 방식으로 생겨난다면, - 지금까지 '지능'은 이런 복잡한 시스템에서 탄생해왔다. 진화론을 믿는다면 우리의 지능도 마찬가지다. - 이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것을 우리는 제어할 수가 없다. 인간을 해치지 못하도록 막는 로봇3원칙도 없고 학습의 범위를 한정하는 제약도 없다. 아무런 도덕성도 없으며 단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만을 할 것이다. 강력한 인공지능이 점차 기계에 의존해가는 인류에게 사형선고를 내린다면 인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 주 석 ------------------


(1) 로봇3원칙 (로봇공학3원칙) : 아이작 아시모프의 유명 시리즈 '로봇'에 등장한 법칙.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상해를 끼치거나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된다.
둘째, 로봇은 1원칙에 위배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인간의 모든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셋째, 로봇은 1,2원칙을 위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2) 로버트 소여의 컬럼 '인공지능, SF, 매트릭스'에 나오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해설을 읽어보라.

 영화 첫 부분을 보면, 우리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조상들에게 분명 인공적인 어떤 단일체가 나타나 뼈다귀 사용법을 가르쳐준다. 그 다음 장면은 미래로 훌쩍 건너뛰어 우주선 디스커버리 호가 그 단일체를 만들어낸 존재를 찾아 목성으로 출발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행을 하면서 디스커버리 호의 중앙 컴퓨터인 Hal은 미쳐서 디스커버리 호의 모든 인간 승무원들을 죽인다. 그중 데이브 바우먼만 간신히 살아남아 Hal이 그를 죽이기 전에 컴퓨터 뇌관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다. 그가 컴퓨터를 끄기 전에 Hal은 다음과 같은 말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번 임무는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에 당신들이 망치게 놔둘 수 없었습니다."
Hal을 해치우고서 바우먼은 그 단일체를 만들어낸 존재, 즉 단일체를 만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는 외계인들을 찾아 티모시 리어리처럼 사이키델릭한 여행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가 마침내 그 단일체가 온 곳에 도착했을 때 무슨 일이 발생했던가? 그가 발견한 것은 '또다른'단일체 뿐이었다. 그리고 그 단일체는 그를 죽을 때까지 화려한 호텔방에 가둔다.
맞지 않나? 이것이 줄거리다. 그러나 모두가 놓치고 있었던 것을 할이 옳고 인간들이 틀렸다는 것이다. 그 단일체를 만든 존재는 없었다. 단일체를 만든 생물적 외계인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단일체는 인공지능이었고 수백만년전 자신의 조물주의 자리를 찬탈했던 것이다.
왜 단일체는 4백만년전 그들 중 하나를 지구로 보냈을까. 원시인들이 도구를 다루도록 가르치기 위해, 그래서 원시인들이 예정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즉 인간들이 그 무엇보다도 정교한 도구인 '다른'인공지능을 만들게 한 것이다. 단일체는 원시인의 후손, 데이브 바우먼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원시인이 만들어 썼던 도구의 후손, 즉 'Hal'을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단일체를 만나러 가는 임무가 너무나 중요하여 한갓 인간들이 망치게 놔둘 수 없었다고 할이 말했을 때, 할은 옳았다. 할은 디스커버리 호를 통제하여 자신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생해 낸 단일체, 즉 자기보다 진보된 인공지능을 만나러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한 인간, 즉 원시인의 후손이 단일체의 고향 별에 도착했을 때 단일체들은 이 한심한 생명체를 말 그대로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그래서 일종의 우주 호텔에 투숙시키고 남은 생을 거기서 살게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바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그리고 있는 것이다. 생물적 생명 형태는 궁극적으로 인공지능들에 의해 대체될 운명이라는 것이다.


(3) MIPS : 컴퓨터의 처리속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1초에 백만개의 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4) 무어의 법칙 : 반도체 산업의 컴퓨터 집적회로를 언급하면서 비용은 증가하지 않지만 컴퓨터 칩 용량과 처리속도는 매 12~24개월마다 두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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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전부터 준비했던 글인데 생각만큼 표현이 안 되는군요.
Part II는 유나바머와 네오 러다이트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자료는 많이 모아놨는데 생각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 쉽지가 않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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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거창한 글을 쓰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한때 즐겨마셨던 그 술에대한 애정을 풀어놓으려는 것뿐이죠.
첫 인상은, 그러니까 기네스라는 술의 첫 인상은 '상당히 비싸고 그저그런 병맥주'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썩 비싼 술집의 메뉴판에만 존재하던 '기네스'를 고급 술을 마셔보고 싶다는 객기에 주문했고, 짙은 갈색 병안에 들어있는 액체를 별다른 생각없이 마셔버렸습니다. 다른 맥주와 다를게 없었어요. 특별한 인상이 기억도 나지가 않으니까요.
몇년 지나서 2002년. 월드컵의 열기를 안고 찾게된 아일랜드에서 마주친 '기네스'.
이때쯤엔 조금씩 술맛을 알게되었고, 워낙에 펍문화가 부러웠던지라 친구와 해질무렵 찾곤했던 펍에서 기네스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Two Pints of Guinness, Please.'
항상 둘이었기에 입에 붙어버린 저 말. 맞는지 틀린지도 모르고 그냥 바텐더에게 지껄여댔던 저 말이 그때는 왜 그리 멋지게 들렸는지.
주문을 받은 바텐더는 테이블 밑에서 'Guinness'가 찍힌 커다란 Pint 잔을 두개 꺼내고 흑갈색 액체를 잔에 3/4 가량 따릅니다. 여기가 재미있는데, 조금 남겨두고 따른후에, 잠깐 기다려야해요. 시끌시끌한 바 앞에 서서 흰 거품과 불투명한 흑색 액체로 나눠지는 기네스를 바라보며 서있는 그 순간을 사랑했어요.
흰 거품이 떠오르고 나면 나머지를 더 따르는데, 그 순간 살짝 망가지는 흰색과 검은색의 경계가 안타까울정도라니까요.
파인트 잔을 하나씩 들고 친구와 대충 펍의 구석진 아무곳에나 서서 이것저것 떠들어대면서 마시는 첫 모금. 크림같이 하얗고 부드러운 거품이 입술에 와서 살며시 신고를 하면, 곧이어 담배꽁초가 잔뜩 들어간 맥주병에서 따른듯한 마시면 안될것같은 검은 액체가 입안 가득 들어오는데 오비나 하이트, 버드, 하이네켄 같은 평범한 맥주와는 다른 그 이상한 맛에 갸우뚱하게되죠.
한모금 꿀꺽. 또 한모금 꿀꺽. 두 모금째에 반해버렸어요. 라거 맥주류의 탁 쏘는 맛이 아니라 부드럽고 진한 에일맥주의 매력. 이상한말인데, 친구랑 둘이서 기네스를 마실때를 이렇게 표현했었어요. 부드럽고 차가운 액체가 목에서 꼴딱, 꼴딱, 넘어간다고.
한참 기네스에 반해있을때 찾아갔던 기네스 팩토리에서는 공장의 한층 한층을 올라가는 견학 과정의 마지막 순서로 맨 위층에 공장에서 만든 기네스를 시식할수있게 펍을 만들어놓았어요. 여기서 마셨던 기네스는 뭐랄까. 머리를 때리는 맛이었죠.
매일 저녁을 기다리게 만드는 마력. 그 색처럼 두 얼굴을 가진 마녀. 흑마술에라도 걸린듯 펍을 찾아 기네스를 마셨죠. 다행히 아일랜드에서는 가장 싼 맥주였고 파인트 잔은 생각보다 커서 한잔이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재정적으로도 큰 부담은 안되더군요.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렀던 영국의 펍에서는 벌써, 그 맛이 변해있었어요.
친구와 둘이서 의도적으로 찌푸리면서 '이것도 기네스야?'라고 서로 묻던 기억..
아무래도 바다를 넘어가면 알수없는 화학작용에 술 맛이 달라지는 거라고 가설도 세우고 말이죠.
그 친구는 아일랜드에서 돌아온지 1년이 넘도록 얼굴한번 본적이 없었어요. 작년 가을인가에 처음 만나서 역시 기네스를 마시러 갔었죠. 강남에 있는 아이리쉬 펍으로.
한잔에 3유로가 조금 넘던 가장 싸고 맛있었던 마법의 술은 큰 바다를 건너면서 가장 비싸고 그때만큼 깊은 맛을 내지는 못하는 술로 변해있더군요.
그래도 첫 '꼴딱'을 넘기고 서로 만족스러운 그 얼굴빛. 친구와 저는 추억이 진하게 묻어나오는 그 기네스 단 한잔을 위해서 만났는지도 몰라요.
끝을 맺을수가 없군요. 그 기네스를 마시는 순간, 이미 끝이었는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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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iloo.egloos.com miloo 2005.12.13 22:22 신고

    강남역에 - 거기 어디냐 거기.
    아. 거기 다시 가서 마셔봐야지.
    꼴딱꼴딱. ㅎㅎ 갑자기 군침도네 츄르릅.

  2. Favicon of http://hagun.egloos.com hagun 2005.12.18 08:20 신고

    아이리쉬 펍 더블린.
    학교근처 퀸즈네스트에도 있어. 오히려 쌀텐데...

  3. Favicon of http://miloo.egloos.com miloo 2005.12.19 11:07 신고

    아 그 여왕머리 가게 +_+
    거긴 결국 한 번도 안가봤다 재학중에.. 핫핫..;

  4. Favicon of http://exchange.tistory.com Rαtμkiεℓ 2007.06.23 11:54 신고

    역시 현지 가서 먹는 게 제일인 듯 해요. 글 잘 읽었습니다. 언제 한 번 아일랜드 방문하고프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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