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전혀 믿기지 않는,
전혀 믿고 싶지 않은 일들도 생긴다.


아침. 눈을 떳으나 이미 10시. 그래도 어제보단 낫다.
쏟아지는 비를 보며 오늘, 어디 나가지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점심. 어떻게든 한끼를 떼워볼까해서 나가보려했으나,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와 바람이 나갈 엄두가 안난다.
그리고.. 우리집은 멀쩡했지만, 이때 거의 모든 신제주의 집들이 정전이라 갈곳도 없었고...

대강 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집에서 할수있는걸 찾는다.
역시나 발전적인 방향으로 뭔가 하는건 아니고 애니메이션을 다운받는다.
전부터 보고싶었던 '완간 미드나이트'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니.

저녁.
완간 미드나이트를 보고 났더니 갑자기 차를 끌고 나가고 싶어진다.
무섭게 몰아치던 태풍이 지나가고 하늘은 너무나 고요하다.
차도 별로 없으려나- 싶어서 차를 끌고 나선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오늘 하루가 우울해지는 시작이었던것 같다.

안가본 길들을 가보려고 한라수목원으로 올라가는 길...
도로가 완전히 뒤집어져있다.
어디서 내려왔는지 모를 흙더미와 돌들, 뜻어져나간 아스팔트 조각, 나뭇가지...
천천히 속도를 죽이고 도로의 거친 노면을 느낀다.

안가봤던 길을 이곳저곳 돌아다닌다.
Z를 상상하며 악셀을 깊이 밟아보지만, 역시 내 차는 100마력도 안되는 준중형일 뿐이다.

누가있나..싶어서 회사에 갔으나 아무도 없다.
일리마저도 문을 닫은 상태.
저녁이나 먹을까 싶어서 전화를 건다. 메르헨앞 OK.
역시나 길은 무섭도록 험하다.
나무잎과 가지들이 길을 막고 고요한 하늘 속에서 태풍의 흔적을 드러낸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 PS3의 블루레이로 영화를 본다.
잠시나마 영화에 빠져있을 찰나,
전화를 받은 일행의 입에서 무서운 말이 튀어나온다.

'XX님이 돌아가셨대'


사람이 죽는다는건 참 우습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장례식 몇일이 지나면,
우리는 그 사람을 뒤에 남겨두고 아무렇지 않은듯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엄청나게 슬픈 일인것 같으면서도, 정작 울음이 나오지는 않는다.
단지 우울해질뿐이다.
지금껏 그렇게 친한 사람이 죽어서 충격을 받은 적은 없었고,
단지 알았던 사람이거나 누군가의 친구나 부모님일 뿐이었다.
이번에도 회사에서 얼굴보고 인사나 하는 동료분의 이름을 들었고,
우울한 기분으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친한 사람이 죽은적이 있어요?' 라고 묻는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친한 사람이 죽은적이 없어요'

아까 설레는 기분으로 나섰던 도로에서 이제껏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인다.
떠밀려온 동물의 사체, 이미 차에 짓이겨진 시체들, 길가에 즐비한 핏자욱.
뭔가 불길하다. 이런 분위기, 전에도 겪어본적 있어.

가는 길에서, 고인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았다.
정보의 전달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도 짧게-.

이런, 안되는데..

캄보디아를 다녀와서 요즘 막 친해진,
다음주 목요일 저녁때 같이 설레는 저녁으러 저녁까지 먹으러 가기로 했던 사람이었다.
GMC의 모든 것을 챙기는 꼼꼼한 살림꾼이자 모두가 좋아하는 GMC의 얼굴.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까보다 더 무서운 도로가 펼쳐진다.

평소와 너무나 다르게 한적한 도로, 너무나 평화로운 적막함.
마치 조금 전까지 그런 큰 태풍이 없었던것만 같은 그 적막함.

그 적막함이 무섭다.
길에는 여전히 시커먼 덩어리가 펼쳐져있다.
나무조각과, 흙덩이, 납작해진 동물의 사체.


사실 이렇게 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실감이 안난다.
물론 나보다 친한 사람도 많을꺼고, 정말 슬퍼하는 사람도 많을것이다.

하지만, 나도, 정말,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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