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름, 월드컵의 비현실을 안고 중국으로 첫 여행을 떠났습니다. 서로의 현실을 모르는 여행지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이 좋았고, 그 비현실감이 나를 이끌었습니다. 여행에서의 그 비현실감이 너무 사랑스러워 한국에 돌아온지 한달이 채 못되어 아일랜드로 어학연수를 떠났습니다. 온통 다른 머리색을 가진 사람들 틈에 끼어서 치열한 삶을 잊고 지냈습니다. 몇 개월만에 한국으로 돌아오니 그때까지의 계획과는 틀어져 군입대를 준비해야 했습니다.

저에게 군입대는 또 다른 비현실이었습니다. 현실에 치여 바쁘게 살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갔고 정해준 일, 정해준 밥, 정해준 자리에서 생활하며 여유시간에는 느긋하게 책도 읽고 글도 쓰며 비현실을 즐겼습니다. 책마을을 접하고 이곳에 빠지게 된 것도 나에겐 이 생활이 비현실이고 걱정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워하며 소통을 말하고 치열한 삶을 말하는 자들을 바라보며 마음깊이 공감하지 못하고 동참할 수 없었던 것은 나에겐 이것이 비현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이른 전역인사를 올리는 이유는 비현실에서 깨어나라는 외침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전 군입대와 거의 동시에 또 다른 비현실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요 몇달간 책을 줄이고 글을 미루고 준비했던 것들은 너무도 쉬운 생활을 이어나가려는 계획이었을까요. 중학교 때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등이 떠밀려 외고 입시를 준비하며 공부를 하기보다는 그 학교에 간 제 모습을 생각하기만 했습니다. 그때처럼 저는 현실에서 노력하기보다 비현실에서 꿈꿔왔습니다. 그리고 생에 두번째 탈락입니다. 비현실의 세계에서 준비한 현실의 경쟁은 결코 만만한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모든것이 깨어졌습니다. 따사로운 태양빛은 사막의 열기를 내뿜고 시원한 바람은 칼날처럼 베어옵니다. 브리드 카가가 빠져든 제로의 영역처럼 현실의 모든 것이 날카롭게 나에게 달려드는 듯 느껴집니다. 저에겐 이것이 현실입니다. 다람쥐가 챗바퀴를 돌듯이 끝없이 수렁속으로 빠져드는 고통. 매트릭스에서 배터리가 된 인간처럼 기계문명의 톱니바퀴가 되어 시스템에 복종하며 살아야하는 것. 제가 뭘 할수 있을까요.


이제 현실에 부딛혀야 합니다. 전역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저에겐 2002년부터 시작된 길고 길었던 꿈에서 깨어나는 행위입니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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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에 올린 전역인사. 아아,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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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pulse01.egloos.com pulse01 2006.07.09 16:06 신고

    와악!

  2. Favicon of http://sungdh86.egloos.com Ego君 2006.07.09 20:08 신고

    전역 하셨나요?

  3. Favicon of http://miloo.egloos.com miloo 2006.07.10 09:49 신고

    이제. 시작이구나. 후아. 진짜.

  4. 2006.07.10 17:52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hagun.egloos.com hagun 2006.07.11 20:40 신고

    neigie / 누구세요? =_=;

  6. Favicon of http://miloo.egloos.com miloo 2006.07.12 17:16 신고

    neigie? 어디서 많이 들어본 아이디인데 =_=;;

  7. Favicon of http://jinsdream.egloos.com jini 2006.07.13 15:05 신고

    오랜만이네- 사진 정리(?)하거나 책 읽다가 실수로 책 떨어뜨리면 너 생각나곤 했는데...

    참 오래된 이야기 같다. 그래도 직접보면 그대로려나?

    전역축하하고, 열심히 준비해서 멋지고 꿈많은 사회인이 되기를 바래 ^^

    (흑...실수로...취소 눌러서 덧글 한 번 날리고...-_-;)

  8. Favicon of http://hagun.egloos.com hagun 2006.07.13 20:05 신고

    neigie는 주희라네. 주희하면 dione(다이원, 한놈만 죽..;;)만 기억나서... ^^;
    진이도 정말 오랬만이다. 2년 반 정도는 전혀 왕래가 없었구나.

    그나저나, 아직 전역이 아니라서.. 참 뻘쭘;;

  9. Favicon of http://miloo.egloos.com miloo 2006.07.18 12:45 신고

    괜히 휴일에 전화했다가 할아버님이 받으셔서 깜딱!
    뭐야, 지금 어디있는거야~~
    다시 전화해~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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