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넘도록 지하생활을 하면서 아쉬운게 있다면, 물론 맑은 공기와 햇볕이다. 여름에 덥지않고 겨울에 춥지않은건 좋지만 가끔 공기가 안좋다는걸 느낄때는 젊음-나름대로!-을 지하에서 보낸다는게 끔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자전거 하나를 골라타고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간다는 말을 해놓고 사무실을 나섰다. 건물들이 밀집된 지역이라 별로 볼건 없지만 모니터에서 벗어나 햇볕을 쬐며 상쾌한 바람을 맞는다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를 짓게된다.

건빵주머니에 책을 한권씩 넣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내 양 허벅지의 건빵주머니가 다람쥐의 부푼 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다람쥐처럼 도서관에서 먹을거리를 건빵주머니 가득 채워서 집으로 돌아가는 건가-하고. 큭큭거리며 재밌는 생각이니 책마을에 이 소재로 글을 써볼까하다가 다람쥐에서 몇가지 연상이 더 진행되었고, 식량 저장과 곰, 겨울잠 등을 생각했던것 같은데, 문득 따사로운 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날씨가 바람 솔솔 불고 햇살도 따땃해서 착각했나보다. 봄을 만끽할 여유가 없었던건지... 춘곤증에 시달린것은 벌써 몇달전인데 이제서야 봄이구나- 생각을 하다니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6월이고 지옥의 악마같은 대구의 불길이 곧 강림할텐데 무슨 봄인가,하고.


그러고보니, 인트라넷 곳곳에 늦은 봄을 맞이한 청춘들이 많이 보이는것 같다. 어딘가에선 90년생과의 연애 이야기가 들려오고 책마을에도 염장질로 대부분의 회원의 가슴에 못을 박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가하면 가슴아픈 사랑 이야기도 들려오고, 고민도 올라오고, 헤어짐에 아파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몇몇 사람에겐 불길한 말이기는 하지만, 결국 그들도 다시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겠지-하는 생각이 든다.

군대에 와서 오랬동안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한동안 꽤 기운이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면으로는 서로 용기가 없어서 못 헤어졌을 뿐이라는 생각도 했지만, 군대간지 얼마나 됐다고 힘들다면서 다른 남자를 찾다니. 배신감도 느꼈고 오래 만나면서 전혀 생각도 못했던 헤어짐이라 얼떨떨했다. 여자친구 하나를 잃은게 아니라 대학 생활을 함께했던 친구들이 같이 떨어져나간 것이라 더 아쉬웠다. 더 짜증나는건 믿었던 그 녀석들 때문에 꼬인일이라는것.

남몰래 싸이월드나 블로그에서 소식을 훔쳐보기도 그만둿을 즈음 -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 내가 좋아하는 초코렛이 가득 든 상자가 스노우캣 다이어리와 함께 소포로 도착했다. 이런 뇌물까지 바치는데 전화라도 한통 하라는 편지가 적혀있었다. '난 헤어지면 네 얼굴 다시는 안봐'라고 선포했건만 뭐, 전화는 얼굴보는게 아니니까-라고 생각하며 한번 전화를 걸었던 기억이 난다. 꼭 헤어진 일도 없었던것 같은 평온한 전화통화와 그냥 언젠가 또 전화할듯, 혹은 다시는 안할듯 애매했던 통화종료음. 이미 스노우캣 다이어리를 사버렸기에 남은 스노우캣 다이어리를 친구에게 생색내며 선물하고, 초코렛을 야금야금 맛있게 먹었다. 그 다이어리도 이제 다 쓰고 넘겨버린지 오래고, 초코릿은 더 빨리 사라졌고, 기억도 흐려져갔다.

뭐, 이제 다 지나간 일이고 첫사랑의 기억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니 더이상 미련도 없다. 한때는 훈련을 받으면서도 손가락에 새겨진 반지의 모양이 지워질까 손가락만 타지말라고 가리고 다녔던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랑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첫사랑을 떠나보냈을때는 더 힘들었고, 멍하니 있다가 정신차리라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그것도 1년이 안되었던것 같다. 사람은 잊혀지고, 사랑은 더 쉽게 잊혀진다.

누구에게나 봄은 계속 돌아오고 모두 다시 연애에 빠질것이다. 과거의 가슴아픈 사랑도 가끔 생각날테고, 노래가사처럼 그 이야기를 술자리의 안주거리로 삼아 이야기할것이다. 다시는 사랑을 하지 못할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또 누군가를 사랑할테고, 가슴아파할테고, 다시 사랑할테지.

그러니까 뒤늦게 느낀 봄내음에 한껏 몸을 맡기고, 사랑하자. 우리는 그러라고 존재하는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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