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에스콰이어에 실렸던 The Photo Issue의 James Nachtwey 편입니다. 사진이 몇장 같이 실려있는데 올리긴 힘들겠네요. War Photographer에 나온 사진도 있어요. 전쟁사진가가 어떤 직업인지 잘 보여주는 것 같아 타이핑해서 올려봅니다.


What I've Learned

James Nachtwey, 전쟁 사진가, 56세, 뉴욕 시


● 솔직한 전쟁사진이 곧 반전 사진이다.

● 총알이 내 몸을 뚫지 못하리라고 생각해본 적은 물론 없다. 내 다리에는 수류탄 파편이 무수히 박혀 있다.

● 르완다에서 대량학살이 자행될 때 가해자들이 사용한 무기는 대부분 농기구다. 낫, 공봉, 도끼, 창. 바로 눈앞에서 그런 무기들로 사람을 죽였다. 그것도 전혀 대항할 힘이 없는 사람들을. 어린아이들과 바로 이웃에서 살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 학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 후에 남은 흔적을 눈으로 직접 보며 그 끔찍한 학살이 다름 아닌 공포와 증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그토록 가까운 사람들을 그토록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폭탄을 떨어뜨려도 많은 사람들이 죽지만 폭탄을 투하하는 조종자는 그 폭탄 때문에 죽어갈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싸운 알렉산더의 병사들도 무기를 지닌 상대와 싸웠다. 최소한 일정 수준의 동등성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낫과 도끼로 대항력 없는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 지금까지 전쟁터를 누비며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종교 때문이 아니다. 지금껏 경험한 전쟁은 대부분 영토 싸움이며 권력 투쟁이다. 다만 양쪽이 서로 종교가 다를 뿐이다.

●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청회색 셔츠, 이 셔츠는 전쟁지역에서는 입을 수 없다. 군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사기 십상이다. 전쟁터에서는 흰색 셔츠를 입는 것이 좋다. 일단 더운 지역이 많고, 흰색은 중립적인 색이라 주변 상황에 잘 섞여든다.

● 전쟁터 한가운데서 총알이 스치는 소리, 바로 코앞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살아나오는 것은 아주 짜릿하다. 평상적인 상황에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드레날린이 폭발적으로 분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그 짜릿함이나 아드레날린 때문이 아니다. 아드레날린만 믿고 전쟁터를 누비며 사진을 찍을 멍청이가 어디 있겠는가.

● 나는 반 귀머거리다. 양쪽 귀 신경이 손상되었기 대문이다. 가끔은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할 때도 있다.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에, 더욱 더 소리가 듣고 싶어서 귀마개를 하지 않는다. 감각이나 감정도 수용하면 할수록 더 많이 원하게 된다. 비록 극단적이고, 고통스러우며, 해로운 것일지라도.

● 질병과 기아는 대량파과의 기본적인 무기다. 논밭을 태우고 짐승을 죽여버리면, 남은 사람들은 생존의 위협에 노출된다. 소말리아에서는 이런식으로 수십만의 사람들이 죽어갔다.

● 9월10일 밤 열한시에 프랑스에서 돌아와, 바로 다음날 다른 취재를 하러 가기 위해 짐을 싸놓았다. 다음날 아침, 방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바로 그 소리가 들렸다. 쿵! 쾅! 그게 어디서 나는 소린지 알 수 없어서 두리번거리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첫 번째 빌딩이 불타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사고로 화재가 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상했다. 나는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다시 창가로 가서 불난 곳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두 번째 폭발음이 들렸고, 두번째 빌딩마저 화염에 휩싸였다. 그제야 실수로 일어난 사고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올려다보니 유리 파편, 쇳덩어리 같은 것들이 우수수 나에게 떨어지고 있었다. 너무나 섬뜩하고 무서운 순간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름답기까지 했다. 사진을 찍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꼈다. 그러나 내가 초공간에 있다 하더라도 그 순간 사진을 찍을 시간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찰나의 순간에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인지하고 결정을 내리고 인간의 능력 밖이라고 여겨질 만한, 물리적으로 먼 거리를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그게 현실이었을까 싶다. 그 소리를 듣고, 그 장면을 보고, 도저히 사진으로 찍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어느 방향으로 피할까를 결정하고 실제로 그곳에 닿을 때까지 1초나 걸렸을까? 밀레니엄 호텔에 문이 하나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호텔 로비로 죽을힘을 다해 뛰어 들어갔다. 로비의 외벽은 두꺼운 판유리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 판유리가 산산조각 나 건물 안쪽으로 쏟아져 들어올 거란 계산을 했다. 나는 가능한 한 호텔 안쪽 깊숙한 곳으로 달려갔다.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나는 그곳으로 뛰어 들어가 벽에 등을 찰싹 붙였다. 그리고는 사방이 깜깜해졌다.

정말 완벽하게 칠흑같은 어둠이었다. 한밤중에 옷장속에 들어가 문을 꼭꼭 닫은 것처럼. 살아 있음을 알려주는 유일한 것은 내가 숨이 막혀 캑캑거리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바닥에 가능한 한 낮게 엎드린 채 네 발로 기어나와 누구 다친 사람 없느냐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나 침묵뿐이었다. 저 멀리서 깜빡깜빡하는 작은 불빛이 보였다. 그 불빛이 뭔지도 모르면서 불빛을 향해 기어갔다. 한참을 기어간 끝에 그 불빛이 어떤 자동차의 방향 지시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도로까지 기어 나온 것이다. 여전히 사방은 검은 먼지 구름에 갇혀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다행히 동서남북은 구별할 수 있었다. 대략 방향을 잡을 후 북쪽을 향해 움직였다. 드디어 어둠을 뚫고 빛 한줄기가 보였다. 그 빛 쪽으로 다가갔다. 그 와중에도 카메라는 일어 버리지 않았다. 카메라 끈을 목에 걸고 있었다. 경찰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탈출시키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나는 그날 하루 종일 사진을 찍으면서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내가 살아남은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음을 절실히 느끼면서. 지금 내 앞에는 사진 한 장이 놓여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구겨지고 구부러진 쇳덩어리로 남았다. 그 위에는 하늘도 없었다. 오로지 연기와 먼지뿐이었다. 마치 모든 것의 종말이 온 것 같았다. 카메라 프레임 속의 작은 인물은 폐허 속에서 생존자를 찾는 소방관이다. 그 상황을 말로 설명하려는 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조명도, 필름도 바닥이 날 때까지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그때가 9시 30분이었다. 사진들을 <타임>지에 넘겼다. 평생 그렇게 많은 사진을 찍은 날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다.

집에 가려면 몇 마일을 걸어야 했다. 14번가 이남의 맨해튼은 완전히 비어 있었다. 불빛 하나 없이, 온통 검은 분진만이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주방위군이 도로마다 쫙 깔렸다. 블록마다 바리케이드가 쳐졌다. 바리케이드를 지나려면 신분증을 보여주어야 했다. 숨을 한번씩 들이쉴 때마다 매캐한 연기 냄새가 목과 코를 자극했다. 집에 도착해보니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더운 물도 나오지 않았다. 촛불을 켜야 했다. 내게는 아주 익숙한 상황이었다. 다시 전쟁터에 있었던 것이다. 아주 여러 장소에서, 아주 여러 번 같은 상황을 경험했다. 그곳은 전쟁터였다. 다만 이번에는 그 전쟁터가 내 나라 땅 안에 있다는 점만이 달랐다.



한때는 로버트 카파를 동경해 전쟁사진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내 삶을 거의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그냥 꿈으로 남겨뒀지만, 문득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피사체를 위해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사진을 위해 그들을 이용하는 건 아닐까-하고. War Photographer에서 James Nachtwey가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느꼈던 생각이 나네요. 그때부터 팬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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