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아베돈 - 가식과 진실의 딜레마 - Part I. 마스크, 가식의 초상사진
리차드 아베돈 - 가식과 진실의 딜레마 - Part II. 탈-마스크 작업


0. 탈-마스크화

리차드 아베돈이 인물 초상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내적 닮음의 진실이다. 이때 사진 촬영 행위는 물질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한 마스크를 제거하면서 본질을 누설하는 '탈-마스크화'또는 '탈-신비화'로 간주된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작가는 의도적으로 사진 매체만이 가지는 특별한 몇 가지 표현적인 방식들을 실행한다.


1. 모델 선택

작가가 실행하는 탈-마스크화는 우선 모델선택에 있다. 왜냐하면 그림의 경우와는 달리 순수 사진의 영역에서 어떤 대상을 직접적으로 변형시키는 표현적인 방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상을 표현하는 몇몇 기술적인 효과들을 제외하고 작가가 할수있는 유일한 표현 방식은 근본적으로 문화적 코드로서 읽을 수 있는 모델의 선택뿐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배우, 가수, 예술가, 정치인 등 과거에 성공한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곧 죽음을 앞둔 늙은 유명 인사를 선택한다. 왜냐하면 이런 모델 선택 자체가 이미 대중에 의해 신성화된 우상파괴가 된다. 아무리 신성화된 우상이라도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에 불과한 것이고 누구도 죽음을 피할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서 인간이 허구적으로 만든 모든 가식이 제거되면서 역설적으로 어떤 본질적인 진실 혹은 상황적인 모순과 허무가 은밀히 폭로된다.

미국의 유명한 시인을 찍은 사진에서 시인으로서 갖는 신비는 전혀 없이 오히려 늙은 인간의 동물적인 추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그러나 여기서 아베돈의 사진적 목적은 결코 모델을 비하시키는데 있는게 아니라, 신성화된 추상적인 이미지를 전복시키면서, 또한 집단의 특별한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맹목적인 우상을 파괴하면서, 인간의 생물학적 진실을 드러내는데 있다. 이때 찍혀진 인물은 이러한 암시를 담고 있는 하나의 예로서 선택되었을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아베돈의 탈-마스크화는 앤디 워홀의 유명인 시리즈가 던지는 메시지와 같은 맥락을 가진다. 앤디 워홀의 유명인 이미지는 더이상 대중의 우상으로서 이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거의 유령화된 괴물로 나타난다. 이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우상 이미지를 파괴하는 작업임과 동시에 그들은 개인적으로 모두 불행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돈의 사진들은 워홀과 달리 대중 매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자본주의 우상과 허상을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위장된 가식과 생물학적 존재의 진실에 관계한다.

또 한편으로 작가는 인간이라는 정의에 대하여 오랬동안 익숙한 이성적 조건을 뛰어넘는 특별한 인간을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예컨대 정신병자들, 납골당 미이라, 네이팜 피해자, 아직도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 벌로 뒤덮인 사람 등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기인들이나 기형인들 혹은 비정상적인 조건을 가진 익명의 사람들이다. 특히 70년대 이후 촬영대상은 거의 비정상적인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는 인간조건의 극한 상황에 대한 관상학적 탐구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인물 사진 이면에 숨겨진 인간의 생물학적 본질을 사진으로 폭로하고 있다. 예를들어 그는 1963년 루이지애나에 있는 주립 정신병동에서 몇주간 머물면서 많은 정신병 환자들과 그들의 일상을 촬영하였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된 이 시리즈는 그의 다른 사진들과는 달리 아주 거친 입자와 흐린 효과 속에 나타나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효과들은 이미지들이 있음직한 기록 영화속에서 현실이 아닌 비현실적인 어떤 몽롱한 공간으로 침수되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의 재현의도는 사회학적 관점의 자료적인 차원도 아니며, 인간 종류의 생물학적 추적이나 혹은 다이안 아버스의 사진과 같이 매조키즘과 불평등한 존재의 문제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랬동안 이성과 조화 그리고 균형이라는 전통적 규범에 의해 규정된 인간에 대한 가식을 벗기면서 인간 존재의 진실을 폭로하는데 있다.


2. 극 사실 방식

두번째 제스처는 의도적인 극 사실 방식이다. 그는 그림이 할수없는 사진의 특수한 표현을 활용하는데, 이러한 표현을 통해 단순한 순간 포착이 아닌 그대로 찍어내는 자국으로서의 기록을 만들어낸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의도적으로 세밀한 부분까지 표현이 가능한 큰 사진판을 활용한다. 인물 작업 초기부터 Rolleiflex 중형 카메라의 정방형 이미지를 사용했고, 69년 이후 Deardorf 8x10 pouce 을 사용한다. 이러한 큰 사진판을 활용하는 가장 큰 목적은 생물학적인 극 사실 효과와 촬영순간 모델과의 긴장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데 있었다.

큰 사진판을 사용해서 만들어진 그의 사진은 동물적인 피부의 선명한 땀구멍과 깊이 파인 주림이 강조되어 있다. 거기서 인간의 귀족적이고 고귀한 품위와 체면은 사라지고, 더 이상 유명인의 얼굴이 아닌 오직 어떤 인간 종류의 늙은 동물로 나타난다. 이처럼 인간의 눈보다 더 무차별한 눈으로 재현된 사진은 결국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나약한 동물에 불과함을 암시하고 있다.


3. 조형화된 모델의 인공성

형식적인 측면에서 그의 사진들은 전통적인 방식을 이탈하고 있다. 우선 크기에 있어 대형화되는 경향과 동시에 화면을 꽉 채우는 클로즈업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의 사진은 일반적으로 대형화되어있다. 전통적인 사이즈에서 심지어 2m 70cm까지 커진다. 이러한 사이즈의 대형화는 인간 실물을 선호하고, 연극적 장식물이나 그림 이미지와 경쟁적인 맥락을 가지며, 또한 관객과 이미지 사이의 상호 교환적인 동질성을 추구할 목적을 가진다. 반면 이러한 대형화는 결과적으로 이미지에 불안정한 구성과 잘려나간 틀 그리고 불완전한 사진 입자 등을 야기시킨다.

또한 많은 사진들이 19세기 줄리아 마가렛 캐머런의 초상사진처럼  모델의 얼굴 부분이 크게 확대되어 있다.

아베돈은 사진 촬영에 연출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이미지에 의도적으로 서술적인 추상과 환상을 야기시킨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는 스튜디오의 전통적인 촬영 방식과 전통적 다큐멘터리 촬영 방식에 모델의 움직임과 서술성을 강조하는 영화적인 방식을 결합하여 새로운 촬영 방식을 만들었다. 특히 패션 사진에서 그는 예를 들어 한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거리에 물을 뿌려 비가 오는 효과나 밤에 안개와 빛을 비추어 만드는 야경효과를 활용하는데, 그 결과 장면은 언제나 영화화되어 나타난다.

또한 사진의 인공성은 촬영 시 연출된 의도적인 배경에서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초기 인물 초상사진에서부터 모델을 바닥과 배경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흰색 혹은 회색으로 된 흐린 배겨을 선호했다. 이는 결과물을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기념물로 만들면서 일종의 장식적인 효과를 가지고 온다. 게다가 흰 배경에 의도적으로 딱 하나만 활용하는 무차별한 조명은 모델을 더욱 더 비현실적으로 만든다.

이와같이 정면성, 단순성, 흰 배경, 무차별한 조명, 클로즈 업, 지나치게 과장된 실물 크기 사이즈 등은 촬영상의 상황 설정에 따라 대상을 왜곡시키면서 거의 설정된 모델을 비현실적인 인물로 만든다. 더욱이 거의 정물같이 연출된 인물 사진에서 강조된 액세세러와 의복은 우리의 의식을 문화와 자연의 극단적인 경계면으로 이동시키면서 역설적으로 가식과 진실을 생생히 폭로하고 있다.


4. 탈-마스크 작업

탈-마스크 작업은 특히 촬영순간에 보다 분명해진다. 그것은 찍히는 순간 작가는 모델이 거의 무의식적으로 가지는 고착된 귀족성, 심사숙고, 근엄성, 진지함 등 인간이 오랫동안 특별한 목적에 의해 길들여져 온 인간의 가식을 사진으로 폭로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진의 예는 바로 우리 사회의 고착화된 모든 종류의 가식을 암시하는 은유로 간주될 수 있다.

아베돈은 의식적인 포즈를 통해 나오는 진지한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면서 모델의 꾸미지 않은 진실을 포착하려 했다. '초상사진은 자기가 곧 찍혀질 줄 아는 사람의 이미지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포즈는 모델 자신이 찍힌다는 사실을 알고 카메라 정면에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유치원 아이들도 자신이 찍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포즈를 잡고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래서 포즈는 언제나 타인에 대한 자신의 연극이며, 인물 사진은 하나의 허구임과 동시에 소설과 같은 사진 촬영자의 창작물이기도 하다. 예컨대 모델과 촬영자는 그들이 실행해야 할 포즈와 행위를 이미 알고 있고, 또한 그와 같은 포즈로 나온 이미지는 사실상 자신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시각에 초점이 맞추어진 이미지가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인물 초상사진은 사회적 가식을 말하는 가장 직접적인 모델이 되고 있다.

1976년 출간된 그의 <Portraits>는 이와 같은 탈-신비화 작업을 결론지을 수 있는 중요한 사진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유명한것은 1969년부터 1973년까지 간암으로 죽어가는 80대 부친을 시간적 간격을 가지면서 촬영한 일곱장의 초상사진들이다. 이 시리즈는 죽음에 임박한 상황에서 아버지의 두상이 점진적으로 어떤 허무를 상기시키는 해골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특히 여섯번째 사진과 마지막 사진은 거의 체념에 이르는 어떤 공포로 심화된다. 각 이미지들은 자신의 아버지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미화되어 획일적으로 나타나는 장례식 초상사진과는 달리, 어떠한 왜곡이나 과장도 없이 대상의 객관적인 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훗날 아베돈은 '나의 사진들은 아버지의 조바심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곧 찍힌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부터 자신의 행동과 제스처가 달라지는 오늘날 우리의 공통된 의식 즉 마스크를 말하고 있다.

'사진들은 내 아버지를 재현한 것도 아니고, 내가 아버지에게 느낀 것을 재현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우리들 중 아무나 될 수 있다는 것을 재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사진은 한 인간이 죽어가는 과정에 대한 생생한 상황전달도 아니며, 죽음이나 퇴행 또는 추에 대한 의미적인 재현도 아니다. 그것은 작가의 개인적인 초상이 아니라, 오늘날 집단 마스크에 감추어진 우리 모두의 진실한 초상임을 함축하고 있다.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를 촬영하는 순간은 개념적으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얼굴이 주는 첫 인상으로 사진을 만들 때와 정반대의 경우이다. 그것은 예견치못한 어떤 감각의 찰나에서 순간으로 가는 결정적 순간이 아니라, 모델의 미리 준비된 포즈에서 순간에서 찰나로 되돌아오는 지속된 순간의 단절이다. 이러한 사진은 일상의 한 단면을 몰래 살짝 포착한것이 아니라 재현에 있어서 외관적 측면과 코드를 넘어 내재적 실재성-진실을 누설하고 있다.

필립 뒤봐는 '사진에 의해 누설되는 내적 진실이나 실재성의 원리는 초상사진을 찍는 목적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면서, 리차드 아베돈의 초상사진을 그 예로 들고 있다.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에서 아베돈은 '나에게 사진은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실재성을 보여준다. 나는 단지 사진의 중재를 통해서만 사람들을 만난다'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실재성은 바로 작가가 은밀히 드러내는 우리 모두의 위장된 마스크 이면의 진실이다.

물질 사회에 종속된 모든 현실은 신성화된 초상사진처럼 반허구적 상태에서 코메디를 하고 있다. 미셀 푸코가 우리의 현실을 '우리 모두가 억압자이면서 동시에 피억압자이다'라고 진단한 것처럼, 우리 모두가 마스크를 만들고 동시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 가짜가 진짜로, 허구가 사실로 둔갑하는 마스크의 세계, 이러한 모순은 더 이상 이성이 도달하지 못하는 심연에 존재하는 엄연한 실재이면서 동시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의 딜레마가 된다.




이번엔 정리하는게 더 오래 걸리는것 같아서 문단만 대충 나누고 책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겨적었어요.
아베돈에 대한 글이 조금 긴편인데다가, '과거의 리플을 활용할줄 아는 밀도높은 리플주의자'이자 '패션 사진가 지망생' 형진씨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뭘 추려내기가 애매해서 다 옮겼더니 엄청 기네요. 그대로 타이핑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꼼꼼히 읽어보니 전에 읽었을 때와은 조금 느낌이 다르기도 하네요.

리차드 아베돈의 사진을 정말 짧게 요약하자면, '생물학적으로 도태되어가는 모델선택과 극사실주의적인 사진 기법으로 물질 사회에서 가식으로 그려진 마스크를 파괴하고 신격화된 인물도 결국 인간임을 보여준다'는거죠. 물론 중요한 포인트가 많으니까 이렇게 길게 적었지만요.

아베돈은 그가 명성을 떨쳤다는 패션사진뿐 아니라 그냥 포트레이트에서도 꽤 관심이 생기는 작가예요. 그의 사진집 <Portraits>나 <An Autobiography>가 꼭 보고 싶어 졌어요. 물론 그가 명성을 떨친 패션 사진에서는 주제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도 보고 싶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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