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마스크, 가식의 초상사진


0. 마스크

마스크. 자신의 원래 얼굴을 숨기는 또 다른 얼굴을 말하지만 개념적으로 볼때는 거짓이나 꾸밈을 뜻하는 것으로, 의도적으로 어떤 대상의 본질을 감추고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대상을 지향하는 경우를 말한다. 즉 진실과 반대되는 의미로 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의식주를 위한 투쟁만이 존재하던 원시사회에는 없었지만, 집단공동체에서 마스크는 언제나 존재했다. 계급, 도덕, 관습 등을 기반으로하는 전통사회는 체제유지와 통제를 위해 집단과 형식을 우선해왔고, 집단적 가치에 이탈된 진실은 의도적으로 감추어지고 가식이 정당화되었다. 기념식, 이벤트에서 결혼식까지 사회적 의미가 부여된 모든 행사 자체를 가식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행사에는 집단이 정해놓은 절차만 있을 뿐, 개체의 주관적 의향은 무시된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 것은 행사 자체보다 집단적 가치관에 종속되는 획일적인 가치판단이다. 가령 유명 호텔에 소형차를 타고 갈때와 대형차를 타고 갈때 주차장 책임자의 행동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책임자의 차별은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잘못된 것이 아니다. 호텔 주차장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인품이 아닌 사회적으로 인정된 가치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다. 다른 예로 우리가 대학을 갈 때 우리는 취향과 적성에 맞는 대학을 선택해서 가지 않는다. 이미 사회가 만들어놓은 서열과 집단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신분상승을 위한 인간의 욕구를 암시하고 이 욕구는 또 다른 가식과 위선 그리고 내용없는 사회적 포장심리만 만연시킬 것이다.

결국 물질만능 사회에서 명품 열기, 외모 지상주의, 위선과 가식은 사람을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인 동시에 역으로 신분상승을 가능케하는 유일한 방편이 되었다. 이런 마스크 개념은 물질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정신적 딜레마가 되었다. 이때 과거 사실의 증거로서 나타나는 사진은 가장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마스크가 된다.


1. 외적 재현과 내적 재현

인간은 외모만으로 평가될 수 없다. 사람은 가식과 진실 또는 외모와 정신이 풍기는 두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품고있다. 우리의 조상은 단순히 외모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고, 서양에서도 이중 인간이라는 개념으로 외적인 인간과 정신적으로 존재하는 본질적인 인간을 혼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사진이 보여주는 외모에 그 모든 증거와 진실을 부여하게 되었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인간을 시간에 따라 변하는 공간적 자아와 언제나 불변하는 심층적 자아의 이중으로 겹쳐진 존재로 규정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재현도 외적 재현과 내적 재현이 있다. 초상은 특징적으로 언제나 외적 닮음이 내적 닮음을 위장하고 있다. 그러나 위대한 초상화가들이 재현하고자 한 궁극적인 것은 모델의 내적 닮음이었다. 원래 초상은 죽은 인간의 이미지를 보존하려는 욕구의 산물이고, 특히 얼굴을 재현하는 이유는 얼굴이 그 사람 전체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초상의 개념은 원래 시간에 따라 사라지는 인간의 육체적인 닮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에 관계하는 닮음이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초상은 외적 닮음을 의미하지 않았다. 고인의 얼굴 특징을 잡은 간단한 초상을 집어넣었고, 정신적 닮음을 위해 상형문자를 주석으로 달았다. 그러나 집단 사회가 분명해지면서 내적 닮음의 재현이 외적 닮음으로 전이되었다.

이것은 로마시대 통치자들에 의해 집단의 조직과 통제를 위해 의도적으로 가식화되어 거의 신성화되면서 나타났다. 로마시대 두상은 귀족시대에 초상화로 바뀌었고 초상화는 외면보다 그 사람의 내적 존재를 신성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사용하는 장례식 사진도 고인의 죽기전 모습보다 미리 준비된 전성기때의 근엄하거나 위대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것은 죽은이에 대한 진정한 평가가 아니라 인간의 연약함과 모순을 위장하기 위해 그리고 집단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치밀하게 조작된 일종의 마스크였다.


2. 초상사진의 출현

19세기 과학적 실증주의와 초상사진의 출현은 재현에 대한 모든 인식을 완전히 전복시켰다. 과학적 사고 즉 합리주의와 실증주의는 더이상 내적 닮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사진이 보여주는 외적 닮음이 유일한 재현의 주체가 되었다. 결국 사진은 인간의 증언보다도 더 객관적인 증거가 되었다.

계몽시대 이후 집단사회는 평등과 민주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통제를 위한 엄격한 제도적 장치를 내세워 결국 또 다른 계급사회를 만들었다. 장치의 대표적인 것으로 예식, 장례식 등을 들수있는데, 이는 가식적이고 인위적인 사진들과 같다. 모델은 찍힌다는 것을 아는 순간 제스처나 포즈를 취하기 때문에 사진 이미지들의 연속은 일종의 가장행렬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물질사회의 대중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초상사진을 일종의 신분 마스크로 믿게 되었는데, 초상사진은 특히 그 사람의 외적 닮음을 사회적 계층속에서 합리화시키면서 신분상승의 욕구를 채우는 유일한 방편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내적 닮음이 아닌 사진 마스크를 통한 외적 닮음의 사회적 문화적 인정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이 인정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맹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길어져서 나눴어요. 어떻게 줄이기가 좀 애매해가지구요...
반정도 정리한건데, 아직까지 리차드 아베돈에 대한 내용은 없네요. 지금까지 설명한 배경에서 아베돈이 어떻게 탈-마스크화를 이뤄냈는지가 앞으로 나올거예요. 간단히 줄이면 너무 간단하게 축약해버리게 되니까 정리하기가 애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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