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증
[의학] 대변이 대장 속에 오래 맺혀 있고, 잘 누어지지 아니하는 병. -  한컴사전



어제 건물 뒤편에 쌓여가던 폐기물들을 처리했다. 몇달간 쌓여만 가던 녀석들이 싹 사라지니 몸은 조금 힘들어도 마음이 후련하다. 이 시원한 느낌, 분명 자주 느끼던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잠시 연상해보니, 변비가 생각났다.

나에겐 안좋은 버릇이 하나 있는데, 말하기 부끄럽지만 화장실에 잘 안간다는 것이다. 별로 할일도 없으면서 화장실 가서 잠깐 앉아있는 시간이 아깝고, 화장실까지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 바지를 내리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뒷처리를 하고 손을 씻고 나온다는 일련의 과정이 왠지 귀찮아서 안간다. 화장실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머리속에 그 일련의 과정이 그려지고, 괜히 화장실이 꽉 차있으면 그냥 돌아오기도 아쉽고 그렇다고 기다려서 방금전까지 변기에 앉아있던 사람과 얼굴 마주치기가 민망해서 안간다. 그렇게 화장실을 자주 안가다보니, 숙명적으로 변비가 찾아와서 막상 큰맘먹고 화장실에 앉으면, 괴롭다. 일련의 과정에 괴로움이 추가되니 또 화장실에 안가게되고... 반복된 안순환.

화장실에 자주 안간다고 안먹고 사는건 아니니 배속은 항상 뭔가가 가득 차있는 물풍선같은 느낌이고, 체중계에 올라가 몸무게를 볼 때면 내 뱃속엔 뭔가가 많으니까 실제 몸무게는 저것보다 훨씬 적게 나갈거라는 자기위안을 하기도 한다. 배속에 블랙홀이 들어앉아 있는건 아니기 때문에 가끔 화장실에 가게되는데, 이것또한 괴롭다. 배속이 꾸륵꾸륵 요동을 치면 TV나 만화에서 주인공이 타놓은 변비약을 먹은 조연마냥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화장실로 달려가곤한다.

생리적인 변비 현상 말고도, 나에겐 또 하나의 변비가 있다. 일단 '문학적 변비'라고 조금 냄새 나지만 거룩한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증상은 뭐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책을 읽고 후기를 써야하는데 '일련의 과정'이 귀찮아 머리속에 채워만 놓고, 컬럼을 읽거나 일상에서 있었던 사건을 내 생각으로 정리하는 글을 쓰고 싶지만 잘 못쓸것 같은 두려움에 지금은 안써도 언젠가 쓰겠다는 생각으로 소재만 적어놓고 넘어가기도 하고, 갑자기 써보고 싶은 글이 생각나서 단편을 구상했다가도 머리속의 구상과 종이에 끄적인 개요 정도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역시 책을 안읽는 것도 아니고 사회생활을 안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쓰려고 하는 글은 계속 생기고, 실제로 글은 거의 못쓰기 때문에 머리속에 노트에 끄적인 개요가 난지도가 산이 되었듯이 쌓여만간다. 한번 쌓이기 시작하면, 역시 악순환이다. 저번에 쓰려고 했던 글을 못썼으니까 새로 글을 시작하기는 애매하고, 저번에 쓰다가 던져둔 글을 쓰자니 또 막혀버리고. 그렇게 쓰레기 더미처럼 쌓여만간다.

내 문학적 변비가 생리적인 것과 다른 것은, 머리속에는 블랙홀이 존재하는 건지 아니면 아직 내 머리의 빈 공간이 넓어서 무리없이 쌓아두고 있는건지, 계속 들어오고 나가는 건 없어도 머리가 아파서 토하러 뛰쳐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라리 생리적인 현상처럼 고통스러워도 모아서 뱉어내는 일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필연적인 고통이 없으니 계속 쌓여만간다. 무슨 욕심에서인지 써야할 글 목록을 만들어서는 리스트에 추가하면서 볼때마다 변비에 시달리는 뱃속처럼 묵직하게 찜찜하다.

아아, 누군가 나에게 '문학적 아락실'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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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iloo.egloos.com miloo 2006.05.19 19:22 신고

    체중계에 올라 자기위안 - 100% 공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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