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어렸을 때 부터 교회에 다녔다. 그러나 단 한번도 종교에 완벽하게 나 자신을 맡길 수 없었다. 항상 의심이 생겼고, 모순이 눈에 들어왔다. 지식에 목말라 기독교 뿐 아니라 다양한 종교에 대해 공부했고,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 종교를 해석하려 했다. 당연히 나에겐 믿음이 없었다. 나 자신을 알 수 업섰다. 습관처럼 교회에 가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면서 나에게 믿음을 달라고 외치는 중에도 난 신을 의심했고 그에게서 돌아섰다.

그 무렵 나에게 두가지 세상이 생겼다. 착하고 말 잘듣고 교회에 다니는 모범생과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혼자 간직한 채 세상 전부를 우습게 보던 내가 존재했다. 항상 웃으며 말을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그 사람을 귀찮아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데미안을 처음 만난것이 바로 이 때쯤인것같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충 읽고 던져버렸고, 다시 읽고 던졌고, 또 읽고, 읽었다. 어느새 마음에 동요가 있을 때마다 찾는 글이 되었지만 왜 데미안을 좋아하는지 알수 없었고,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냥 활자의 묶음이 머리속에 들어와 휘젖고 나가는 기분이었다. 읽고나면 차분해지는 느낌이 좋아서 가끔 한번씩 읽었다.

몇년이 흐르고 그 사이에 내 두 세상은 서로 타협하고 한 세상을 나눠가지고 있었다. 여자친구가 생겼고, 누구에게도 이야기 안했던 내 세계를 조금씩 열어보였다. 확실히 달라진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데미안이 내게 일으킨 변화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수많은 환경이 나를 변화시켰을거라 생각했다. 이 당시에는 데미안을 거의 이해도 못했으니까. 세상이 변한뒤로는 데미안이 내게서 점점 멀어져 어느샌가 잊혀져 버렸다.

몇년이 지나 인터넷 서점의 할인과 이벤트에 혹해서 데미안을 샀다. 상당히 많은 책을 한꺼번에 샀기 때문에 셀수 없을 정도로 읽었다고 생각했던 데미안은 다른 흥미로운 책들에 밀렸고, 이제야 다시 읽게 되었다. 이번엔 의도적으로 천천히 시간을 들여 곱씹으면서 책장을 넘겼다. 잠시 딴 생각을 해서 흐름을 놓치면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읽어내렸다.

놀라웠다. 내 청소년기와 대학생활의 방황이 전부 들어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많이 읽으면서도 전혀 느끼지 못했던 내 모습이었다. 물론 데미안이나 싱클레어의 모습이 완벽히 나와 같다고 할 순 없다. 난 결코 데미안같은 표식을 지니고 있는것 같지도 않고, 싱클레어처럼 스승을 만나고 자신속의 길을 발견하지도 못했다. 다만 싱클레어의 방황의 모습과 길을 찾아가려는 모습에서 나를 보았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싱클레어에게 스승이 데미안이듯이 내 스승은 이 책 '데미안'이었다. 나는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데미안의 영향을 받았고 나 자신의 길을 찾아 모험을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싱클레어처럼 자신의 길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여전히 교회에 가면서 고민하고는 한다. 그래도 나 자신의 탐구와 고뇌, 내가 느낄 수 있는 스승들과 느끼지 못하는 스승들의 도움으로 언젠가는 내 길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 투쟁이 끝나는 순간, 내 이마에도 데미안과 싱클레어와 같은 표적이 존재할거라고 믿는다.


 



헤르만 헤세 저 | 민음사 | 2000년 12월
 
ISBN : 893746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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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iloo.egloos.com miloo 2006.02.03 19:04 신고

    오. 간만에 들어보는군. 헤르만헤세의 서문. 잊을수가 없어 역시나.

  2. qny37 2007.04.02 13:39 신고

    난 중학교때 던진 이 후로 다신 거들떠도 안보게 되었는데.. ㅎㅎ;;

    새삼.. 땡기네요,, 하지만.. 이제 책이 없다는거~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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