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세계 3대 판타지를 만나다.
 
 
어렸을때 아버지가 해외 출장을 가셔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았고, 자연스레 어머니를 따라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같은 책을 읽고 서로 감상을 말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람직한 방향으로 독서를 시작했던것 같다. 이때쯤 집에 ACE88이라는 전집이 있었다. 유명한 책들이 꽤 있었던걸로 기억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미하엘 엔데의 모모, 끝없는 이야기 같은 것도 있었고, 폭력적인 신부님과 돈 어쩌고 하는 이름의 깡패가 끊임없이 싸우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이라는 책도 있었다. 그리고 톨킨의 호빗과 반지의 제왕, 어슐라 르 귄의 어스시의 마법사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소파에 누워 커다란 바게뜨를 뜯어 먹으면서 반지의 제왕에 빠져들었고, 게드와 함께 어스시를 도망다녔다. 어스시의 마법사 마지막에 게드가 그림자의 이름을 부르는 장면은 어렸을 때 읽었던 그 어떤 책보다도 엄청난 쾌감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10년 가량 지나서 어릴때 읽었던 반지의 제왕과 어스시의 마법사가 세계 3대 판타지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나머지 하나는 그 당시엔 생소한 이름의 '나니아 연대기'였다. 그때는 TRPG를 하면서 D&D 세계관에 익숙해지고 나름대로 많은 판타지를 읽었고, 이영도씨의 책에 빠져들었던 시기라 동화같은 느낌의 나니아 연대기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또한 제대로 번역된 책이 없다는 말을 들으니 어렵게 구해서 읽을 생각도 없었다. 당시엔 반지의 제왕도 제대로 된 책이 없어서 아쉬운 때였다. 그렇게 또 몇년이 흘러 놀랍게도 반지의 제왕이 영화화되면서 책이 새로 번역되어 나왔고 어릴때 읽었던 전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쉬워하던 참에 영화를 등에 업고 나온 책을 사버렸다. 판타지에 대한 지식이 부쩍 늘어 아쉬운 점이 많은 번역이었지만 오랬만에 읽는 반지의 제왕은 어릴때 읽었던 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 이해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전에 읽었던 책이 전과는 다르게 읽혀졌다. 어렸을때 머리속으로 상상했던 많은 것들이 실제로 눈앞에 나타난 영화는 더욱 놀라웠고, 매년 겨울 영화를 기다리면서 3년이 흘렀다.
 
반지의 제왕에 열광했던 3년도 금방 지나가고 갑자기 나니아 연대기 영화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이 갑자기 반지의 제왕에 열광했던 것처럼 나니아 연대기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7권의 책이 한권으로 묶여서 출판됐고, yes24에서는 네티즌이 뽑은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책 수집욕에 불타오르던 나도 왠만한 사전보다 더 두꺼운 그 책을 사게되었다. 이로써 세계 3대 판타지를 모두 읽어볼수 있다는 흡족감에 글 자체에 재미를 느끼기보다도 의무감에 나니아 연대기를 읽게 되었다.


1. 기독교적 판타지 동화?
 
나니아 연대기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너무 기독교적 냄새가 강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니아 연대기 안에서 아슬란은 노래로 나니아를 창조하고 자신을 희생해 생명을 구하고 다시 살아난다. 모든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있는 자의 눈에 나타나고, 나니아의 마지막 날에는 믿음에 따라 아슬란을 따르는 자들만 더 높은 세계로 가게된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들먹이며 우리 세계의 본질적 세계가 존재함을 말하지만 이미 기독교적 세계관에 익숙해져서 그냥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만 든다.
 
사랑하는 루시,
이 이야기는 너를 위해 쓴 거다.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할 무렵에는 여자 아이들이 책보다 더 빨리 자랄줄은 미처 몰랐구나. 너는 이제 요정 이야기를 읽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어 버렸고 이 글이 인쇄되어 책으로 나올 즈음에는 훨씬 더 나이가 들어 있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요정 이야기를 다시 읽을 나이가 될 게다. 그때는 어느 높은 선반에서 이 책을 꺼내, 먼지를 털어내고 이 책에 대한 네 생각을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겠지. 어쩌면 나는 너무 귀가 먹어서 네 말을 듣지 못하거나 너무 늙어서 네 말을 이해할수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래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는 대부로 남아있을거다.
C. S. 루이스
 
 
또 많이 나오는 말은 애들 동화같애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위의 글은 처음 쓰여진 에피소드이자 연대적으로는 두번째 에피소드인 '사자와 마녀와 옷장'의 서문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자상한 루이스의 모습을 볼수 있으며, 루이스는 자신의 조카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의 조카들에 대한 애정이 이 판타지 동화를 쓰게 했지만, 기독교적 관점을 잔뜩 집어넣은걸 보면 어려서부터 이 동화를 읽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이해하도록 만든 것 같다.
 
우리가 동화같다고 생각하는 조건은 뭐가 있을까? 단순히 문체가 동화적이라면 '~ 했어요~'라고 번역해놓으면 어떤 책이든지 동화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나니아 연대기는 번역 자체도 동화적인 느낌이 나지만, 등장인물들의 나이가 어리고 갈등구조가 단순하다는 것, 전능한 선한 인물(?)이 내용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모든 것을 해피엔딩으로 만드는 것, 무엇보다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내려다보는 서술방식이 정말 '동화적'이다.
 
그러나 동화적이라는 것이 작품의 재미를 떨어트린다고 하기는 어렵다. 어른이 읽는 동화는 어릴적의 감성을 자극하고 자신이 잃어버린 세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읽는 사람은 이미 동화속의 세상에서 떨어져 나왔지만 자신이 속해있었던 아름다운 기억을 추억하며 책을 읽는 동안 어머니의 품속같은 따듯함을 느낄수 있다. 그리고 나니아 연대기는 동화적 판타지지 동화는 아니다. 수많은 기독교적 암시와 상징들이 있고 이런 것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기독교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작가의 상상력으로 태어난 말하는 동물들과 신화적 반인반수들이 매권마다 등장해 모험을 흥미롭게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2. 반지의 제왕과의 비교
 
루이스와 톨킨이라는 절친한 두 친구가 쓴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은 여러가지 면에서 비교를 하게된다. 비교를 당하고 경쟁하기 위해서 쓴 글들은 아니겠지만 쓰여진 시기가 비슷하고 두 친구가 썼고 3대 판타지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니 비교를 안할수가 없다.
 
두 소설은 공통적으로 '선의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 착한자들은 행복하고 나쁜자들은 계략이 실패하고 죽거나 쫒겨난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보이는 한계가 있다. 나니아 연대기의 주인공들, 즉 선한 자들은 백인이고 무장한 모습은 십자군을 연상시킨다. 나니아를 멸망시키는 칼로르멘인들은 완벽한 이슬람의 모습이다. 반지의 제왕도 마찬가지로 백인과 백인보다 더 하얀 엘프가 검은 피부의 인간과 오크를 물리치고 평화를 되찾는다. 오래전에 쓰여진 소설이니 그 당시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이해는 되지만 흰색 피부를 갖지못한 어린이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될까?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의 시초이고 3대 판타지로 불리면서도 지금의 판타지에서 흔히 볼수있는 마법의 체계가 없다. 3대 판타지의 다른 하나인 어스시의 마법사까지도 마법에 대한 설정이 특별히 없다는 것은 꽤 놀라웠다. D&D나 일본의 드래곤 퀘스트 류의 마법체계가 판타지를 게임화 시키면서 나타난 것인지는 알수없지만 세계 3대 판타지에는 마법체계가 없다. 놀랍지 않은가?
 
나니아 연대기는 신화적 이야기이다. 유일신이 존재하고 주인공들과 함께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반면 반지의 제왕은 특별한 신이 존재하지 않고, 인간의 힘으로 모든 것을 제압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나니아 연대기가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면 반지의 제왕은 성인을 위한 소설이다. 언어를 하나 만들어 냈을 정도의 방대한 설정과 다양한 시들은 분명히 아이들을 위한것은 아니다.


3. 우리의 동화?
 
나는 상당히 서구적인 것을 좋아한다. 양식을 좋아하고 포도주를 마시며 서양 철학을 읽고 기독교를 믿는다. 어느샌가 서양 것들을 내것인양 친숙하게 생각하는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동양사람인데 동양적인 사상이나 생활보다 서양의 것들이 훨씬 친숙하다니. 내가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어렸을때 읽은 동화들이 무엇이 있나 생각해 보게 된다. 토끼와 거북, 콩쥐 팥쥐를 시작으로 배추도사와 무도사가 보여준 많은 우리나라 설화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우리 고유의 동화보다 많고 친숙한 서양의 동화들이 있다. 어렸을때 읽은 책들은 대부분 외국 동화나 소설이었고, 만화도 루니툰 같은 것들이었다. 콩쥐팥쥐보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가 더 친숙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머리를 땋고 한복을 입은 노란 얼굴의 콩쥐보다 드레스를 입은 하얀 얼굴의 백설공주가 더 친숙해진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어렸을 때부터 동화에서 서양적인 가치관을 주입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백인종을 우월하게 여기고 서양 동화에 나오는 동양적인 모습을 오히려 더 낮설게 받아들인다. 우리나라 여자 어린이들의 목표는 신데렐라지 심청이가 아니다. 외국의 동화에 지배당하는 우리나라 아이들은 나처럼 서양 문물을 우리 고유의 것보다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우리나라에 나니아 연대기 같은 뛰어난 동화가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환상적인 세계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를 마음속에 심어줄 수 있는 멋진 동화. 어른이 되어서 읽어도 전혀 유치하지 않고 자신이 떠나야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는 우리의 동화가 절실하다.
 
 
 

 

C.S. 루이스 글/폴린 베인즈 그림/햇살과나무꾼 역

시공주니어 | 원제 The Chronicles of Narnia | 2005년 11월

ISBN : 8952744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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